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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의 구색을 갖추어라." (표준국어대사전)

     

    "새색시가 차려  밥상은 시골 채소와 영계백숙  요모조모 구색 갖추고 있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평소 생활하다 보면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익숙하게 사용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구색을 갖추다'란 말도 그중 하나입니다.

     

     

    '구색'이란 단어의 의미

     

    '구색(色)'이란 단어의 앞글자인 '구(具)'는 구비, 구체적 등의 단어에서도 사용되며 '갖추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색(色)'은 색채나 얼굴빛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어로만 풀이하면 '색을 갖추다' 정도의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구색(色)'의 뜻을 '여러 가지 물건을 고루 갖춤. 또는 그런 모양새.'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구색을 갖추다'란 말이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구색을 갖추다'란 말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구색을 갖추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구(具)'는 이미 '갖추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색을 갖춰라'라는 말을 풀어쓰자면 '여러 가지 물건을 갖추는 것을 갖추어라'와 같은 뜻이 됩니다. 명백한 중복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말 중에는 이처럼 중복 표현이 더러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초가집'입니다. '초가'의 '가(家)'는 이미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족발'에서 '족(足)'은 발이라는 뜻의 한자입니다. 여러해 자라 더 이상 크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를 뜻하는 '고목나무'에서 '고목(木)' 역시 이미 오래된 나무(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뒤에 '나무'를 덧붙인 단어입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한자어를 쓰고 이어서 한국어를 덧붙인다는 점입니다. 한국어를 덧붙이지 않으면 왠지 말을 하다만 느낌이고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아무리 잘못된 표현이라고 알고 있어도 굳이 '초가' 뒤에는 '집'을 붙여야 제대로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의미를 말을 중복해서 표현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자어로 된 단어 중에서도 비슷한 의미의 한자어를 중복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명확하게 만드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한 예로 '있어야 할 것을 빠짐없이 다 갖춤'이라는 뜻을 가진 '구비(備)'를 들 수 있습니다. '구비(備)'의 '구(具)'와 '비(備)'는 모두 '갖추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를 가진 한자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갖추다'란 뜻을 강조하였고, '있어야 할 것을 빠짐없이 다 갖추다'란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필요한 사항을 두루두루 갖추었다'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할 때 '구색을 갖추다'라고 '갖추다'란 의미를 반복함으로써 '두루두루 갖추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색을 갖추다'의 정확한 표현

     

    '여러가지가 고루 갖추어지게 하다.'라는 의미의 정확한 표현은 '구색을 맞추다'입니다. 여기서 '구색(色)'은 '여러가지 물건이 고루 갖추어진 모양새'를 뜻합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구색'을 찾으면 아래와 같은 예문이 나옵니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구색'이란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가 갖추어야 하는 여러 요건 정도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구색을 맞춘다'는 것은 이 요건을 충족시켜 '우리나라도 민주주의 국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민주주의를 하려면 행정부인 정부, 사법부인 법원, 입법부인 국회가 각각 독립적으로 설립되어야 하기에, 민주주의 국가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국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입법부로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미 일상생활에서 '구색을 갖추다'란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만큼, 이를 잘못된 표현이라고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이 무엇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사용해야 말에 조금이라도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